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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늘 푸르른 물가의 저 나무처럼, 풍산류씨 문중전” 개최
11. 19~2013. 1.20
2012년 11월 18일 (일) 09:43:03 박유정 기자 webmaster@dgn.or.kr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 유교문화 박물관에서는 19일 본원 대강당에서 하회마을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기념하여 “늘 푸르른 물가의 저 나무처럼-풍산류씨 문중전”이라는 주제로 하회마을을 만들어 나갔던 안동의 대표적 명가인 풍산류씨의 인물들과 생활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풍산류씨 문중전은 하회마을을 만들어왔던 풍산류씨들의 삶의 태도와 학문세계, 우국충정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과 학문을 재조명하는 자리이다. 풍산류씨 문중에서는 그 동안 모두 30,000여 점의 자료를 기탁하였는데, 그 가운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풍산류씨가의 삶과 학문을 보여주는 자료 60여 점을 엄선하여 “늘 푸르른 물가의 저 나무처럼”라는 주제로 소개하는 전시회이다.

500년 동안 하회마을을 지켰던 풍산류씨
하회마을은 남쪽으로 흐르던 낙동강이 하회에 이르러 잠시 동북쪽으로 선회하여 큰 원을 그리며 산을 휘감아 안고 산 안에 물이 흐르는 곳이다. 긴 타원형의 마을을 물이 돌아 나간다고 해서 ‘물돌이동’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하회河回 또는 하외河阝畏라고 불렀다. 하회는 이러한 지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즉 연꽃이 물 위에 뜬 형상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특별히 길지의 하나로 여겼다.
풍산류씨가 하회에 자리잡은 것은 고려말 조선초기 류종혜가 배상공과 함께 하회촌으로 이주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류종혜의 후손들이 세거함으로써 하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집성촌으로 알려지고 있다. 풍산류씨 가문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지속적으로 사환하였으나 대표적인 명문으로 발돋움한 것은 16세기 류중영柳仲郢-운룡·성룡雲龍․成龍 부자대였다. 특히 류운룡․류성룡 형제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퇴계의 대표적인 안동지역 문인으로 인정되었고 특히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활동하면서 국난을 극복하는데 공헌하였으며, 퇴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서애학맥을 건설함으로써 한국 유학사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6세기 이후 풍산류씨 가문은 3대 6불천위(류중영, 류중엄, 류경심, 류운룡, 류성룡, 류진)를 배출하면서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가문이 되었으며, 세간에서는 ‘하회의 류씨는 늘 푸르다[河柳靑靑]’고 할 정도로 학문과 지조로 인정을 받은 가문이었다. 이러한 하회의 가풍은 항상 퇴계학맥을 고수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대표적인 양반의 세거지인 하회마을에서 지배계급인 양반과 선비의 허구성을 폭로 야유하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가 풍산류씨들의 묵인 하에 연행되었다고 하는 것은 양반들은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시켜 줌으로써 갈등과 저항을 줄여 상하간의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하회마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의 전시
주요 자료를 간략히 소개하면, 먼저 선조제문(보물 제460-3호, 사진1)은 1607년 서애 류성룡의 서거 소식을 들은 선조가 당시 예조좌랑禮曹佐郞 구혜를 보내 치제한 것이다. 충효로 지내온 류성룡의 일평생을 간략히 평가하였고, 나라의 중신을 잃은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또한 필사본『침경요결』(사진2)은 서애 류성룡이 침구술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직접 편찬한 의서로 전쟁 직후 곤경에 처해져 있던 백성을 위하여 직접 그림을 그리고 편집한 책으로 후에 목판본으로 발행되었으나 류성룡이 직접 그리고 서술한 원본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풍산류씨 화경당에서 소장하였던 도성팔도지도(사진3)는 18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전하는데 대동여지도가 나타나기 전에도 국토에 대한 관심이 매우 고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당시 해금정책으로 조선 백성이 거주하지 못하게 한 울릉도뿐만 아니라 독도까지 그린 매우 희귀한 지도이다. 이외에도 평안도 지역을 그린 채색본 관서전도(사진4)도 소개된다.
상대계첩(사진5)과 금오좌목(사진6)은 류성화가 사헌부 감찰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린 계회첩과 류운이 의금부 도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린 계첩으로 앞에는 그림을 그리고, 뒤에는 같은 부서에 근무하면서 계에 참여한 관료들의 명단을 적은 것으로 조선시대 관료 양반들의 삶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매우 좋은 자료이다.
관찰사 이근호 훈령(사진7)과 청주오적소(사진8)는 조선말 일본이 침략해 오는 국난에서 안동유림들이 어떻게 일제에 대항하여 투쟁을 해왔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류도성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예안도회에 참석하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발의하였으며,(관찰사 이근호 훈령)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죽이고 나라를 회복하여야 한다는 충의의 마음을 절실히 토로하였다.(청주오적소)

여성사女性史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여성들의 위상을 재조명하는 코너를 마련하였다. 우선 1594년 작성된 정경부인 김씨가 재주로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준 분재기는(보물 제460-2호, 사진9) 당시 재산상속 관행에서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딸들을 용궁아기, 찰방아기 등 집안에서 부르던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류사춘의 부인인 연안이씨가 아들 이좌와 조카 상조가 같은 해 과거에 급제함을 축하하기 위하여 직접 지은 쌍벽가(사진10)를 비롯하여 사위인 류성룡이 쓴 장모 한양조씨의 묘지명, 그리고 외손자인 전성헌이 쓴 귀촌 류경심의 부인 배씨 묘지명 등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가 된다.
이외에도 류운룡의 문경공 시호교지, 류중영의 추증교지, 초계문신 류이좌가 초계문신시절 작성한 월과月課, 정조 16년 영남만인소의 과정을 기록한 『천휘록』(사진11) 등 하회의 풍산류씨들을 대표하는 유물들이 아울러 전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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