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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_문향의 고장에 숨은 풍수
2020년 12월 09일 (수) 13:27:59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www.locationart.co.kr
   
선학동 바닷가에서 보이는 회진포구와 천관산

회진포 뒤로 천관산이 우뚝 솟았다. 옛날에는 천관산까지 바닷물이 넘실거렸을 것이다. 회진포구는 백의종군을 끝내고 삼수수군통제사로 복권된 이순신 장군이 배설이 숨겨놓은 12척의 함선을 인수하러 온 포구이다. 이곳에서 소위 비장한 결의로 가진 취임식에 해당한 ‘회령포 결의’를 가진 곳이다. 이순신을 도와 함선을 수리했던 후손들이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는 고장이다.

글 동네 장흥

벌교에서 주먹자랑 말고, 여수에서 돈자랑 말고, 진도에서 소리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자랑 말고, 장흥에서 글자랑 하지마라. 선학동 옆 동네 진목리에 이청준이 태어났고 말년에 귀향하여 문학작품을 썼던 생가가 있다. 선학동을 무대로 한 그의 작품 <선학동나그네>은 임권택 감독에 의해 2006년 오정해를 주연으로 만든 영화 <천년학>의 원작이다. 그 외에도 정진우 감독의 <석화촌>,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이장호 감독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이창동 감독의 <밀양>,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 합니다> 등이 있다.

   
향교에서 보이는 문필봉

장흥향교도 규모가 크지만 전라도의 향교는 대체로 규모가 크다. 그만큼 공교육에 기대는 바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장흥 출신 글쟁이는 100여명이 된다. 바다가 보이는 회진면 신상리 마을에 있는 한승원의 생가는 이청준의 집에서 20리 정도 거리이다. 한승원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있다. 임권택 감독이 1989년 강수연을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한승원의 딸이 한강이다. 그녀는 영국의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했다. 그녀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아기부처>도 영화화 된 작품이다.


   
천관산의 자태

관산읍에 있는 장흥위씨의 집성촌인 방촌마을에서 보이는 천관산이다. 황금들판과 개천을 건너 보이는 천관산은 조산격으로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을 부여하는 영산(靈山)이다.

특히 존재 위백규의 사랑채에서 보는 천관산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방촌마을의 전경

천관산에서 이어져 나온 부드러운 능선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마을의 낙산(뒤에서 보호해주는 산) 뒤로 바다와 남해의 섬들이 보인다. 비옥한 전답과 바다를 끼고 있어서 물산이 풍부한 동네이다.

   
회령진성에서 본 천관산과 들판

간적 전에는 바닷물이 넘실거렸을 들판이다. 사진 우측에 문필봉이 있다. 장흥에서는 어딜가나 문필봉을 찾을 수 있다.

   
문필봉

장흥 출신 문인들이 많은 이유를 풍수로 확인이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을 갖고 장흥에 내려왔다. 글을 잘 쓰는 풍수지형은 한 마디로 문필봉과 지혜를 품고 있는 수성의 산과 예술혼을 지닌 화성의 산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장흥에서는 문필봉을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고개를 들고 휘돌아보면 문필봉이 보인다. 관산읍과 회진면 사이에 있는 천관산은 하늘이 내려준 모자이다. 하늘에서 특별한 재주의 기운을 지닌 산으로 그 암릉의 아름다움이 호남 최고의 자랑거리이다. 관산읍의 방촌마을은 조선시대 사대부 장흥 위씨 가문의 집성촌이다. 시조 위계연은 고려조 문하시중을 지냈고, 고려충신 위중(魏种)은 이성계의 미움을 받아 유배당했으며, 존재 위백규(1727-1798)는 이용후생학의 선구자적 인물이며 사회개혁을 주장한 호남 3대 천재이다.
   
존재고택의 후원과 천관산

   
장흥 죽헌 고택

위계창이(1861-1943) 살았던 집. 파조 위덕의(1540-1613)의 10대손, 사랑채는 1919년에 신축. 좌청룡 사당 앞에 용틀임을 하는 감나무가 인상적이다. 우백호 능선 너머 존재 위백규의 고택이 있다.

차가운 굴뚝에 피는 연기는 붉은 느릅나무 삶는 것이네

촌사람의 생활은 정말 개탄스럽고

지금 나라의 곡식은 떨어졌건만

고기 먹어 배부른 벼슬아치들은 아무 생각이 없네

라는 시를 지어 벼슬아치들의 횡포를 신랄하게 고발했다. 방촌마을의 뒷산은 아기자기하나 황금들판과 삼산천을 건너 커다란 장막처럼 버티고 있는 천관산은 뚝심 그 자체이다. 방촌마을에서 매일 천관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장흥 위씨는 그 성격 또한 천관산을 닮아 아름답고 수려하지만 뚝심만은 남에게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백규의 글 또한 뛰어났으며, 문집으로 <존재집>이 전한다.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장흥은 동학농민혁명으로 치열하고 처절한 전쟁을 겪었던 고장이다. 지금 기념관이 있는 자리가 전쟁터였다. 장흥은 가족 도두가 동학교도인 경우가 많았다. 장태장군 이방언은 장태로 조총을 가진 일본군에 맞선 전술로 유명하다. 동학군에게 있어서 별칭이 있는 장군은 녹두장군과 장태장군 뿐이다.


   
장태

대나무로 엮어서 만들었는데, 장태를 굴리면서 적진으로 쳐들어갔다. 조총의 총알이 장태를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을 정도였다.

   
   
가지산 보림사

통일신라시대 860년 보조체징(804-880)이 창건한 절. 선문구산 중 가지산문의 중심사찰. 통일신라시대에 백제지역 사찰에 적용된 풍수지형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음. 지형적 특징은 먼저 양의 지형이 아닌 음의 지형을 선호, 둘째 능선이 없는 산비탈이나 평지에 위치. 일반작으로 사찰의 전각은 능선 위에 짓는데, 보림사의 대적광전이나 대웅보전은 산비탈을 평지로 만든 곳에 위치하고 있다. 풍수적으로 이런 지형의 사찰은 문중이 오래 이어지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장흥의 역사 지리적 특징

장흥은 삼면이 바다로 싸여 있으며 내륙은 탐진강이 관통하고 있다. 광양 백계산 옥룡사, 여수 금오산 향일암, 장흥 가지산 보림사 등은 도선국사, 원효대사, 보조체징 등 통일신라의 고승들이 사찰을 창건하여 주석했던 것으로 보아 탐진강 동쪽 지역은 백제 지역이었지만 통일신라의 영향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에 장흥은 교통요지로 이곳을 거쳐야 완도와 해남 그리고 진도와 목포로 연결된다. 동쪽지역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 물산이 풍부하며 특히 관산읍, 회진면에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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