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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수
2020년 12월 09일 (수) 13:21:50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www.locationart.co.kr
   
      유교풍수, 조선풍수의 정수를 보여주는 경복궁

신라, 고려를 이어온 화엄불교는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므로 동향을 선호한다. 이성계의 풍수참모였던 무학스님은 그런 이유로 한양의 궁궐을 인욍산을 등지고 동향으로 지으려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많다. 조선은 정교를 분리한 왕조국가였으므로 종교는 불교를 유지하였으나 정치는 유교를 국시로 하였으므로 정치마당인 궁궐을 남향으로 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은 고려를 이어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존속했던 왕조국가였다.

고려의 백성이 조선의 백성이 된 것인데도 조선의 풍수와 고려의 풍수는 다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조선은 유교풍수였고, 고려는 불교풍수였기 때문이다.

풍수도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풍수의 특징은 묘지풍수이다. 이성계는 조선을 창업하자마자 1392년 10월28일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무덤을 왕릉으로 승격시켜 정비하고 능지기를 배치시키고 재궁을 세웠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정통성 있는 왕조로 만들기 위한 방편 중의 하나였다. 무학대사를 풍수참모로 데리고 다니면서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이성계는 풍수 신봉자였다.
   

      건 원 릉 (사진제공:손인천)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풍수에서 찾으려고 한 것은 역사성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 고려도 도선국사의 헌신으로 천지신명의 기운을 받아 일개의 평민이 오앙으로 등극했음을 <고려사>에 적고 있다. 고려는 왕건의 생각를 짓는 것에서 풍수를 적용했으나, 조선은 이성계의 조상 묘를 왕릉으로 조성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풍수는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오국시대부터 존재했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한다. 풍수는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라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조선의 유교 이데올로기에서는 충과 효가 키워드였다. 그 중에 효를 바탕으로 한 조상숭배사상은 풍수와 한 통속이 되어 조선이 망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괴력을 지닌 사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위로는 임금에서부터 아래로는 천민들까지 풍수에 열광하게 하였다.

   
      종묘

한양은 조선의 도읍지이다. 조선의 궁궐들의 입지를 보면 한양의 중앙이 아니라 한양의서쪽과 북쪽에 치우쳐있다. 한양의 중앙에는 종묘가 자리잡고 있음을 볼 때, 조선은 조상에 대한 예우를 그 무엇보다 우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대부 가문은 서출을 풍수잡과에 합격시켜 풍수실력을 키우도록 하였으며 이들을 이용하여 가문발전의 초석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다. 의령남씨, 청송심씨, 여흥민씨, 남양홍씨, 창녕성씨, 청주한씨, 진주강씨, 파평윤씨, 평산신씨, 경주이씨, 경주김씨, 광산김씨, 광주이씨, 동래정씨, 반남박씨, 안동권씨, 구안동김씨, 신안동김씨, 대구서씨, 청풍김씨, 양주조씨, 풍양조씨, 한산이씨, 해평윤씨 등등 쟁쟁한 삼한갑족들은 제각기 가문의 고유한 풍수설화가 남겨져 전해지고 있다.

기계유씨, 영산신씨, 덕수이씨, 능성구씨, 해주오씨, 수원백씨, 경주김씨, 밀양박씨, 경주최씨, 고령신씨, 해남윤씨, 한양조씨, 풍산홍씨, 월성손씨, 여강이씨, 고성이씨, 연일정씨, 강릉김씨, 강릉최씨, 압해정씨, 장수황씨, 평사신씨, 여산송씨, 은진송씨, 양천허씨, 원주원씨, 창녕조씨 등도 명문가로서 독특한 풍수담론을 가지고 있다.

   
      진주 봉란

진주강씨들이 조산인 비봉산의 기운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여 풍수비보로 봉황의 일을 만들어 둚으로써 가문의 부흥을 꾀하고자 하였다.

또한 가문마다 독특한 풍수스타일을 고수하고 있기도 하며 남다른 명당을 차지하고 있는 가문이다. 비루한 가문에는 풍수설화가 없으나 명문가에는 풍수설화가 가보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특이하게도 경기도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인세력은 역장이 많이 발견되나, 영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인세력은 역장을 기피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서인세력은 질적인 면을 중시하여 명당등급 순위로 조상을 모셨다. 반면 동인세력은 높낮이를 기준으로 위는 조상을 모시고 그 아래로 차례로 후손이 들어가게 하여 위계질서와 통일성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지역과 학파와 이데올로기에 따라 명당을 보는 관점과 땅을 사용하는 순서가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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