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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지형의 화개_하동
2020년 09월 11일 (금) 18:22:54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www.locationart.co.kr
   
                                                              쌍계사 대웅전에서 마당을 본 경관

의상의 제자가 지은 절이니 화엄종이다. 화엄종의 공간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추구했다으므로 매우 간결하고 정갈하다.

도인의 화개

화개는 경사진 산비탈에 차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논밭이 너른 악양과는 경치가 다르다. 논밭은 육신을 건강하게 하지만, 차는 정신을 맑게 한다. 화개는 돌이 아름답고, 악양은 흙이 두텁다. 악양이 사대부의 마을이라면 화개는 선가(仙家)와 불가(佛家)의 마을이다.


   
삼신동

고운선생이 새겨 놓은 동네이름. 신응사, 의신사, 영신사 등등 신(神)자가 들어간 절이 세 개가 있다고 지은 지명


   
   
세이암

범왕리 푸조나무 앞 화개천 계곡의 너럭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자. 고운선생이 세상의 혼탁한 소식을 듣고는 귀를 씻었다는 일화가 있는 곳이다. 폭우로 물이 불어나 개천을 건널 수 없어 드론으로 각자를 찍었다.


신라 말기 고운 최치원은 혼란하고 경직된 사회를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 왔다. 그는 신라말기 지방관료로 전국에 많은 흔적을 남겼지만, 말년에는 세상을 멀리하고 도인으로 지리산에 은거했는데 특히화개에 가장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앞(옛 신응사 터)에는 푸조나무(최치원의 지팡이)와 계곡에 세이암, 신흥삼거리에 삼신동 글자가 바위에 새겨놓았다. 일찌기 삼신동에 신응사와 의신사 그리고 영신사가 있었다. 화개천 중류에 쌍계사가 있다.


   
쌍계, 석문

고운선생의 글씨. 쌍계사로 들어가는 문이란 의미이다.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제47호)

고운선생이 짓고 글을 쓴 신라시대의 비석이다. 고운선생의 친필이다. 비신은 조각이 났으나 정밀하게 붙여 세웠다.

고운선생은 쌍계사 입구에 ‘쌍계 석문’을 돌에 새겨놓았고, 쌍계사에는 고운선생이 직접 짓고 쓴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제47호)가 1200년 세월을 지키고 있다. 남명선생도 지리산에 올라갈 때 쌍계사와 신응사(현재 지명-신흥)에 머물렀으며 고운선생을 그리워했다.


   
화개천 신응사 계곡

고운선생과 남명선생이 극찬한 계곡이다. 현재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자리에 신응사가 있었다. 고은과 남명은 신응사에서 숙박을 했다. 섬진강물은 황토색인데 이곳은 맑고 푸르다. 신응사 계곡은 화개천의 상류이다. 화개천은 지리산 벽소령에서 출발하여 의신마을과 심흥삼거리를 지나 쌍계사를 거쳐 화개장터에 이르러 섬진강에 합류한다.

공간과 장소에 이름을 짓는 것은 스토리텔링과 함께 역사를 품게 한다. 지명은 시간을 초월하여 소통이 가능하게 한다. 나무는 생명을, 돌은 영원성을 의미하므로 고운선생은 이러한 대비로 ‘생명의 영원성’이란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한 달 전의 일도 기억하기 힘든데 천년의 세월을 건너 자연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고 있으니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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