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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솔의 고장, 청송심씨와 진성이씨의 풍수 퍼즐링 : 김규순의 풍수이야기
2020년 01월 27일 (월) 16:19:01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원장 www.locationart.co.kr

 

 

보광산과 현비암(賢 岩). 멀리 한눈에 보이는 산이 청송심씨 시조묘가 있는 보광산이다. 사진 우측의 현비암은 원래는 험악한 바위였는데, 청송심씨 시조 장례 전날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져서 바위가 부서지니 옥순과 같이 아름다운 모양으로 변했다 한다. 지질학적으로는 하식애(河蝕崖)이다. 청솜심씨 시조묘에서 보면 우백호 끝자락이며, 수구막이이기도 하다. 현비암이란 소헌왕후가 배출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바위이다.

청송군은 푸른 소나무가 가득한 고장이다. 낙동정맥이 감싸안고 북쪽으로 열린 틈새로 흐르는 용전천이 만든 고장이다. 동해에서 낙동정맥을 넘어오는 높새바람은 겨울에는 따스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소나무는 땅의 정기를 사람에게 부드럽게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땅의 기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최적의 나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정원수로 소나무는 인기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은 금강송이다. 푸른 솔이 걸러낸 맑은 기운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하니 신선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청송이다.

청송에는 여러 성씨들이 살아왔다. 청송심씨, 진성이씨, 여흥민씨, 평산신씨, 의성김씨, 함안조씨, 밀양박씨, 영양남씨, 안동권씨가 대표적이다. 청송군은 오지라서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은둔하기 위해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 조선의 명문가 반열에 오른 청송심씨와 한민족의 대학자 퇴계 선생을 배출한 진성이씨가 역사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고장이다.

덕천마을의 풍수 퍼즐링

 

찬경루와 소헌공원. 옛 객주건물과 찬경루 등을 합쳐서 소헌왕후를 기리며 소헌공원으로 명명하였다. 찬경루는 용전천에 물이 불어서 건널 수 없는 경우에 보광산에 있는 청송심씨 시조묘를 바라보며 제를 지내던 곳이다. 오지에 이런 유적이 남아 있음은 소헌왕후의 내공에 기인한다.

청송읍에서 덕천마을로 들어가는 고갯길을 넘으니 아름다운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별주부전의 토끼가 용궁에 들어가는 설렘이 이런 것일까. 청송군 파천면 덕천마을(일명 소슬마을)은 신흥천이 감싸도는 와룡산의 끝자락에 있다. 이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송소고택에서 하룻밤 묵었다. 건물이나 주택의 풍수를 ‘양택풍수’라 하는데, 양택풍수는 집을 지은 사람이 만든 인문학적 퍼즐링이다. 퍼즐링은 수수께끼를 푸는 지혜의 고리라는 의미이므로 풍수란 시공을 초월한 조상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장이기도 하다.

마을을 살펴보자면 먼저 북현무•남주작•좌청룡•우백호부터 살펴야 한다. 소슬마을의 뒷산인 북현무는 홀로 높고 가파르다. 남주작은 안산인데 가운데가 계곡으로 갈라져 있다. 좌청룡과 우백호는 없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다시금 찬찬히 뜯어보면 뒷산은 뒤로 바짝 당겨 앉아서 마을의 평탄한 공간을 만들어 주려고 애쓰고 있으며, 안산은 찢어진 계곡이 아니라 풍만한 가슴골을 자랑하고 있는 형상이다. 좌청룡은 작은 개천으로 갈음하고 있으며, 우백호는 왕버들이 심어진 마을도로가 대신하고 있으니 저마다의 소질을 발휘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아름답다. 이렇듯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뭇 다르게 보인다.

송소고장의 안산. 사랑채에 앉아서 솟을대문을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같이 봉긋한 봉우리 세 개가 보인다. 좌측의 봉우리는 살짝 가려졌다. 봉우리 하나가 만석을 의미한다. 주택은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복이 돌아간다. 이 집에 살면 삼만석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청송심씨의 시조인 심홍부는 아들 심연, 손자 심룡으로 이어진다. 심룡의 장남이 심덕부다. 그는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어 좌정승에 오른다. 그의 아들 심온은 영의정이 되었고, 세종의 장인이었으며, 소헌왕후는 그의 딸이다. 심온의 차남 심회도 영의정에 오르니 청송심씨는 조선의 명문가 반열로 우뚝 솟는다.

심덕부의 동생이 심원부(악은공)다. 그는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는 두문불출의 인물이 된다. 두문동으로 들어가서 출사하지 않은 것을 두문불출이라 하는데, 72명의 고려 충신들이 선택한 조선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 결과 심원부와 아들, 손자는 조선개국 세력들에 의해 참살당하여 무덤조차 전하지 않는다. 후손들은 “조선의 벼슬아치가 되지 말라”는 심원부의 유훈에 따라 덕천마을을 터전으로 600년을 살아왔다. 그들이 있었기에 청송군은 유서 깊은 고장이 되었고, 자부심으로 가득한 마을이 있게 된 것이다. 산과 땅은 아름다운 사람을 배출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다.

송소고장(松韶古莊)의 인문정신

 

보광사와 만세루. 시조묘를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보광사는 시조묘 수호사찰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만세루는 청송심씨 문중의 노인들이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들어서 쉬는 자리이다.

마을의 중앙에 자리 잡고 빼어난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송소고장은 1880년에 심호택(심원부의 18대손)에 의해 건립된 고택의 정식 명칭이다. 송소는 심호택의 호다. 송소고장은 경북에서는 경주 최부자집과 함께 만석꾼으로 유명했다. 만석꾼이 지은 집이니만큼 그 속에 송소의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송소고장에 숨겨진 인문정신을 찾아보자.

첫 번째의 인문정신은 나쁜 것은 피하는 것이다. 한옥은 주변보다 지대를 높여서 짓는데 습기로부터 격리하기 위한 방책이다. 목재는 습기가 많으면 쉽게 썩는다. 그러나 송소고장은 지대를 높이지 않았다. 한옥의 수명이 단축되는 것을 감수한 이유가 무엇일까. 마을을 휘도는 개천이 있는데, 물의 유속이 제법 빠르다. 풍수학에서는 물을 재물로 보는데, 물이 빠르게 흐른다는 것은 재물이 빨리 들어오기는 하지만 빨리 나가기도 한다. 지대를 높이지 않는 것은 물이 빨리 빠져나가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비책이다. 즉, 돈을 낭비하거나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송소고장(松韶古莊). 심처대(심원부의 11대손)는 청송 심씨의 본향인 덕천마을을 떠나 안동 방면으로 20리가 떨어진 파천면 지경리 호박골에 터전을 잡는다. 어느 날 덕천마을 본가에서 제사를 지내고 귀가하는 중에 눈위에 쓰러져 의식을 잃은 승려를 업어다가 삼일밤낮을 간호하여 살려낸다. 승려는 보답으로 명당 하나를 잡아준다. 3년이 지나 심처대의 부인이 죽었고, 승려가 점지 해준 명당에 모신다. 그 후로 재물이 늘어나서 심호택 (심처대의 7대손)에 이르러서는 만석꾼이 되어 99칸 대저택을 지으니 1880년의 일이다. 타지에서 돈을 벌어 금의환향한 것이다. 송소고장은 부자가 되어서 들어온 집이지만, 더 큰 부자가 되려는 집이다.

두 번째는 조상의 꿈속에 있다. 장주(莊主) 심재오의 증조부 심호택이 땅 위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꿈을 꾸고 난 후에 택지를 선정했다고 한다. 꿈이나 영감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오랫동안 고민할 경우 계시처럼 나타나는 해결책의 핵심이다. 그 꿈은 가운(家運)이 상승하는 것을 미리 보여준 예언이다. 불을 재물로 나타낸 것이다. 불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쉽게 타오르기도 하지만, 쉽게 꺼질 수도 있다. 불이 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타오르게 하려면 끊임없이 장작을 공급해야 한다. 장작을 넣어주지 않으면 불이 꺼진다. 불이 꺼진다는 것은 재물이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즉, 쉼 없는 노력이 있어야 부자가 되며, 부자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회지도층의 덕목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안산(案山)을 보면 노적가리 같이 둥근 모양의 금성(金星)이 있다. 금성은 부를 상징한다. 그런데 금성이 세 개나 있으니 만석꾼이 아니라 삼만석꾼도 가능하다. 후손이 자기보다 더 큰 부를 창출하라는 염원이 여기에 담겨있다. 삼만석이라면 산술적으로 450만 평의 논을 소유한 것이고, 1년 순수익은 60억 원에 해당된다.

신흥천이 껴안은 덕천마을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다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마을의 크기를 단지라고 한다면 안산의 세 봉우리는 엄청난 부를 뜻한다. 물 단지를 넘칠 정도로 부가 늘어날 것이다. 들어오는 물을 모두 담으려하지 말고 타인에게 나누어 주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흘러넘치는 물을 서로 퍼 담으려다가 단지를 깨뜨리는 수가 생긴다. 단지가 없으면 물을 주어 담을 수가 없다. 이는 장작을 넣어주지 않으면 불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송소고장의 장주는 ‘내 것’은 없고 ‘우리 것’만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과 공동체적 사고의 소유자라야 재물이 끊어지지 않는다. 많아지는 재산만큼 의무도 많아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빛나는 것이다.

진성이씨 시조묘는 대학자의 기운을 잉태

 

보광산에 의탁한 청송심씨 시조묘. 내룡이 생동감이 있으나 강력한 에너지를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후손의 손길이 정성스럽게 닿아 있다. 새로 만든 문인석이 경박스러워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청송군은 진성이씨가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한 곳이다. 진성은 진보의 옛 지명이므로 진보에서 살았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한민족 역사상 위대한 학자인 퇴계 선생의 시조 이석의 무덤이 있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진성이씨 가문에 깃들여진 인문정신을 가문에 전해지는 풍수 설화를 통해서 찾아보자.

‘이석의 아들 이자수가 고을의 이방으로 재직할 때, 고을 원님이 갈람골이 길지임을 알아보고는 이를 검증하고자 이방에게 달걀을 그곳에 묻게 한다. 이방은 원님의 말대로 과연 달걀이 부화하고 닭이 울었다. 풍수에 대한 일가견이 있었던 이방은 달걀이 썩었다고 거짓 보고했다. 이방의 부친이 죽자 명당에 묻게 되는데, 시신이 튀어나와 묻을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한양에 가서 그 고을원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 자리는 벼슬한 사람만 묻힐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하면서 관복을 내어주었고, 시신에 관복을 입혀 매장할 수 있었다.’

진성이씨 시조묘.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기곡산(岐谷山)에 있는 진성이씨 시조 이석과 두 부인의 묘역이다. 아들 이자수가 안동으로 이거(移居)한 후에 묘지관리가 소홀하여 실전하였다가 사진의 맨 위에 있는 증손 양호의 묘에서 지석이 발견되어 1678년 되찾게 되었다. 중간묘를 시조묘로 추정하고 있으며, 아래와 위의 묘는 두 분 부인묘로 추정된다. (진성이씨 세보 참조) 성공한 인물의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풍수적인 작업 후에 공간이동을 한다. 장수황씨 황군서가 부친 황균비를 남원의 명당에 모시고 한양으로 이주한 후 아들 황희정승을 낳은 것도 풍수적 필요에 따른 이동의 비근한 예이다.

진성이씨 후손은 이 설화에서 ‘정직하라’는 교훈을 얻는다. 이자수는 한양까지 가서 이실직고하는 아픔을 겪었으나 개과천선해 진성이씨가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정직하지 못했던 탓에 선친의 장례조차 지내지 못할 뻔했다. 진성이씨 후손만큼은 거짓을 행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다.

이자수는 진성의 기곡을 떠나 안동으로 이주한다. 성공하는 인물들은 적절한 때에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란 공간이동으로 새로운 기운을 얻으려는 풍수적인 요구이다. 장사를 배우려면 시장으로 가야하고, 어부는 바닷가에 살아야 물때를 알 수 있듯이, 학자는 배움의 기운이 가득한 곳을 찾아야 한다. 안동은 은둔의 고장 청송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학자들도 많아서 학문적 내공을 돈독하게 할 기회가 많았다. 정직은 장사나 재물과는 거리가 많다. 학자와 위정자에게 주어지는 화두이다. 시조묘와 이자수의 이주는 대학자 퇴계 선생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다.

풍수는 조상이 던져준 지혜의 고리

 

덕천마을. 주산(뒷산)이 마을의 규모에 비해 높고 가파르다. 가파르다는 것을 상황에 따라서 위압으로 느낄수도 있고, 배려로 볼 수도 있다. 주산이 달려오다가 급하게 정지하는 느낌이고, 안산이 가까이에 서 있으니 화복이 비교적 빨리 진행된다.

생가와 고택, 그리고 무덤에서 명당 여부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을 선택한 조상의 생각과 지혜를 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향악단의 연주자를 보면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지만, 지휘자의 능력에 따라 서로의 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부자는 주택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집 주인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후손은 많아도 모두가 조상의 유지를 이어가지는 않는다. 조상에게서 부여받은 잠재능력을 발휘하는 자만이 조상의 복을 이어갈 것이다.

조상의 복을 이어가는 자는 퍼즐링 즉, 지혜의 고리를 잡은 자다. 퍼즐(puzzle)은 수수께끼이지만, 퍼즐링(puzzle ring)은 수수께끼를 푸는 지혜의 고리다. 조상은 풍수퍼즐을 통해 후손들에게 골고루 화두를 던져주었다. 풍수화두를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리는 잘못을 저지른다면 조상이 던져준 지혜의 고리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좋은 기운은 그 땅과 공간을 통해서 전달된다. 같은 듯 다른 두 명문가의 기운을 받으러 청송에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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