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2019.8.20 화 21:55
> 뉴스 > 칼럼 > 열린칼럼 | 허화평
     
제2장 2. 작은 정부와 신자유주의-2
2019년 05월 31일 (금) 22:29:34 허화평 미래한국재단이사장 webmaster@dgn.or.kr
자유자본주의 체제의 소멸과 공산주의 체제의 초후 승리를 역사 발전의 필연적 법칙으로 주장했던 마르크시스트들은 인류역사 이래 가장 급진적인 전체주의 체제 건설에 성공하고, 자유주의 체제를 위협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는 극단주의 국가주의, 큰 정부 체제였기 때문에 개인은 당과 국가에 예속된 노예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현실에서 자유주의 선구자들이 확신했던 국가란 필요악의 존재라는 진리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켰고 국가주의, 큰 정부야말로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습니다.

마르크시스트들은 유물론자로서 인간 이성과 과학적 실천방식에 근거하여 인간을 당과 국가에 원하고 사회가 바라는 인간으로 개조할 수 있고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확신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존재하는 것은 당과 국가였으며, 개인은 무력했고,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예언했던 것과는 달리 큰 정부 하중을 견뎌내지 못하고 붕괴함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본능을 무시하고 개인의 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종말이야말로 역사발전의 필연적 귀결임을 증명했습니다.

한 때 유럽 제1의 문명국가로서 자타가 공인했던 독일제국의 지식인들은 계몽주의적 국가관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국가란 자기 목적 존재로서 국가의 유지와 강화만을 최고의 원리로 행동하다...국가는 편견이 없고 이성적이었으며, 실용적이고 정의로웠다(막스 프랑크 평전)'

나치가 베르사이유 조약의 가혹한 배상조약을 무력화시키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앞세워 새로운 제국건설을 약속했을 때 독일의 지식인들과 청년들은 광적으로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치러야 했던 희생과 댓가는 너무나 끔직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잔 후 우여곡절 끝에 자유주의 체제로 부흥한 독일이 숙적 프랑스와 손을 잡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뛰어 넘는 EU체제 출범에 앞장선 것도 비극적인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의 결과였습니다.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사상의 이론의 선구자들이 독일,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많이 배출돤 것도 유연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근대국가 출현 이후 세계 정치 경제사는 국가와 개인과 시장간의 경계선을 어디에다 그을 것인가를 두고 다룬 역사라고 단순화시켜서 말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신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한 작은 정부 큰 시장 자유주의 이론은 케인즈의 혼합경제사상인 큰 정부 작은 시장 자유주의 이론에 대한 반동과 국가 계획에 의한 통제경제원칙에 따르는 공산주의 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新neo이란 '구'舊old인 케인즈 이론과 마르크시즘에 대한 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신'이란 개념에는 반케인즈 주의와 혼합경제, 반마르크시즘과 통제경제라는 의미와 최소정부, 최소간섭, 최대시장, 최대개인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21세기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원칙을 중시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르고 케인즈 이론과 마르크시즘이 지닌 모순과 한계를 경험적으로 극복한 자유주의를 말합니다.

ⓒ DGN(http://www.dgn.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DGN 우)42020 대구시 수성구 동대구로 390, 1502호(범어동, 범어타워) TEL: 053)751-3657 | FAX: 053-759-3657
등록번호 : 대구 아 00019 | 등록일자 : 2008년5월13일 | 발행·편집인 : 박연찬 | 청소년보호정책 담당자 : 박연찬
Copyright 2008 by DGN. DGN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mail to webmaster@dgn.or.kr